빠르게 많은 곳을 찍고 돌아보는 여행, 저 역시 예전엔 그런 방식의 여행을 선호했었습니다. 하지만 루앙프라방에서는 그 방식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도시 전체에 흐르는 느긋한 공기와 잔잔한 분위기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에 한 곳, 단 하나의 장소만 머무르며 보내는 ‘슬로우트래블’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아침의 사원에서 시작하는 하루 – 왓 시엥통(Wat Xieng Thong)
루앙프라방의 대표 사원 중 하나인 왓 시엥통. 많은 여행자분들이 이곳을 30분 만에 둘러보고 떠나시지만, 저는 이 사원에서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머물며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햇살이 막 사원 지붕 위로 퍼지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사원의 입구에 들어서자 스님들이 조용히 바닥을 쓸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구석진 벤치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주변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 순간이 명상이었습니다. 그저 숨을 쉬고,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점심 즈음에는 사원 뒷마당 그늘진 자리에서 간단한 과일과 물을 꺼내 먹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스마트폰도 꺼두었습니다. 어떤 정보를 검색하거나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눈과 마음이 이 순간을 충분히 기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카페에서 보내는 오후 – 시사방봉 거리의 ‘로즈우드 카페’
다음 날엔 카페 한 곳에서만 하루를 보내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루앙프라방 시내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로즈우드 카페’는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로컬 카페입니다. 저는 오전 10시쯤 자리를 잡고 앉아, 책 한 권과 노트를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풍경 속에서 혼자 오래 머무는 일이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체가 온전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고, 정원에서 노는 고양이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간간히 들려오는 라오스 팝송을 배경으로 작은 메모를 이어갔습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먼저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왔어요?" 라는 말에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주머니는 이 카페가 1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지역 주민의 삶을 듣는 뜻밖의 교류로 이어졌습니다.
슬로우트래블이 준 진짜 경험
이틀 동안 각각 사원 한 곳, 카페 한 곳에만 머무르며 여행을 했을 뿐인데, 마음은 오히려 더 가득 찼습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조급함 대신, ‘이 순간을 충분히 살고 있구나’라는 만족감이 밀려왔습니다.
사실 루앙프라방은 그 자체가 슬로우트래블에 최적화된 도시입니다. 거리는 크지 않고, 사람들이 조용하며, 자연은 가까이 있습니다. 관광 명소를 빠르게 돌기보다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현지인처럼 하루를 보내보는 시도는 예상보다 훨씬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여행 팁: 루앙프라방 슬로우트래블, 이렇게 해보세요
- 전날 밤에 가고 싶은 장소 한 곳만 정하고,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흘러가 보세요.
- 노트나 책 한 권을 가져가세요. 기록하거나 사색하기에 좋습니다.
- 현지인과 짧은 인사를 나눠보세요. 조용한 대화 한 줄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스마트폰은 꼭 필요한 용도가 아니라면 잠시 꺼두는 걸 추천드립니다.
결론: 여행의 깊이는 머문 시간과 비례한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슬로우트래블은 저에게 여행의 새로운 정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바쁘게 찍고 이동하는 여행에서 벗어나, 한 장소에서 천천히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낯선 도시와 훨씬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루앙프라방에 가신다면,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하루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