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북부의 작은 도시 루앙프라방은 제가 여행을 다니며 가장 마음이 편안했던 곳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용하고 아늑한 도시라는 얘기에 이끌려 잠깐 머무르려 했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한 달 이상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루앙프라방에서 보낸 제 생활을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본 경험을 통해 발견한 일상의 즐거움들을 공유해드리고자 합니다.
1. 아침의 루앙프라방 – 탁발 행렬과 나만의 루틴
루앙프라방의 하루는 새벽의 고요한 공기와 함께 시작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매일 아침 이어지는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었습니다. 도시 곳곳에서 주황색 가사를 두른 승려들이 긴 줄을 지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도시의 리듬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 장면을 단순히 구경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풍경이 제 일상 속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앞에도 작은 탁발 행렬이 지나다녔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매일 새벽 sticky rice(찹쌀밥)를 준비해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저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어느 날 아주머니와 함께 앉아 공양을 드렸는데, 그 짧은 순간 동안 느낀 차분함과 고요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넘어, ‘내가 지금 이 도시의 일상에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감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항상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셨습니다. 루앙프라방은 커피가 참 맛있습니다. 라오스 북부에서 직접 재배한 원두를 사용한 로컬 카페들이 많았는데, 특유의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풍미가 제 입맛에 꼭 맞았습니다. 아침에 탁발 행렬을 보고 난 뒤, 골목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강 건너 산을 바라보던 시간은 제 하루 중 가장 소중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2. 낮의 루앙프라방 – 현지 시장과 소박한 생활
루앙프라방에서 살다 보면 ‘관광지’라는 이미지보다 오히려 ‘시골 장터’의 소박한 풍경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제가 가장 자주 찾은 곳은 아침 시장(Morning Market)이었습니다. 이 시장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진짜 라오스 사람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시장에 가면 아직 살아 있는 닭을 들고 흥정하는 아주머니, 강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내놓은 어부, 직접 재배한 채소를 소쿠리에 담아온 농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매번 시장을 돌며 필요한 채소와 과일을 사곤 했는데, 망고와 파파야는 특히 저렴하고 달콤했습니다. 처음에는 라오스어가 서툴러서 손짓 발짓으로 흥정을 했지만, 나중에는 몇몇 상인들과 얼굴을 트며 웃음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시장에 다녀와서는 작은 숙소 부엌에서 직접 요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기밥솥과 팬 하나로 만드는 단순한 식사였지만, 제가 직접 산 재료로 요리해 먹는 시간이 꽤 즐거웠습니다. 특히 라오스식 쌈(쏨땀과 함께 먹는 허브와 채소들)은 간단하면서도 건강한 느낌이 들어 자주 해 먹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요리하며 지내다 보니, 관광객이 아니라 진짜 현지 주민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특별했던 건, 낮 시간에 강변을 따라 산책하는 습관이었습니다. 루앙프라방은 메콩강과 남칸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해 있는데, 강가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지인 아이들이 강에서 수영을 하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어른들이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도 자연스레 발걸음을 늦추곤 했습니다.
3. 저녁의 루앙프라방 – 야시장의 활기와 사람들
낮이 끝나고 해가 지면 루앙프라방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야시장(Night Market)이 열리면서 도시가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시내 중심 도로에 붉은 천막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다양한 수공예품과 먹거리들이 펼쳐집니다. 저는 처음 며칠 동안은 단순히 구경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야시장에서는 라오스 전통 직물로 만든 가방이나 스카프, 손으로 깎은 목각품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념품이라 생각했지만, 몇몇 상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것이 단순한 판매용 상품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과 직결된 수입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현지 장인들에게 직접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작은 물건이라도 하나씩 사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시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음식이었습니다. 라오스식 국수인 ‘카오삐약’, 숯불에 구운 닭고기 꼬치, 달콤한 바나나 팬케이크까지,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습니다. 매일 저녁 몇 천 원 정도면 충분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고, 길거리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먹는 재미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또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야시장에 가기도 했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자와 하루치 산책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루앙프라방에서만큼은 모두가 같은 여유로운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마치며
루앙프라방에서의 한 달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작은 루틴들, 소박한 시장의 풍경, 그리고 밤마다 펼쳐지는 활기찬 야시장까지, 그 모든 것이 제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습니다. 흔히 여행이라 하면 특별한 관광지를 떠올리지만, 루앙프라방에서는 오히려 일상 그 자체가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저에게 루앙프라방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곳은 나를 천천히 걷게 만들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도시였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앞으로 제 삶의 속도를 조절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