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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한 달 살며 만난 사람들

by richgirl5 2025. 8. 1.

루앙프라방 한달살이 관련 사진

제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건 작년 11월 말이었습니다. 도시가 작고 조용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막상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느껴진 정적과 고요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향긋한 나무 냄새와 천천히 흐르는 메콩강의 바람이 저를 맞아주었고, '아, 이곳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첫 인연,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

처음 묵은 숙소는 작은 골목 안쪽에 있는 로컬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60대 중반의 라오 아주머니가 직접 운영하시던 그곳은 방도 심플했고, 시설은 오래되었지만 사람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매일 아침, 아주머니는 라오식 바게트에 계란과 채소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보였는지 따뜻한 허브차와 함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선 천천히 쉬세요. 시간은 많아요.”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루앙프라방의 노마드들

주로 일하던 카페는 메콩강을 바라보는 작은 테라스 카페였습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자주 마주치게 된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호주에서 온 디자이너셨고, 또 한 분은 일본에서 온 개발자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어떤 날은 업무 이야기를, 또 어떤 날은 각자의 여행지 추천을 주고받았습니다. 긴 대화가 아니었지만, 묘하게 믿음이 가고 정이 갔습니다.

정말 깊었던 연결, 프랑스 출신 요가 강사

제가 루앙프라방에 있는 동안,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무료 요가 수업이 열렸습니다. 그 수업을 진행하던 분이 바로 프랑스에서 온 요가 강사, 클레어였습니다. 늘 흰 린넨 옷을 입고, 땀에 젖은 얼굴로도 환하게 웃던 분이셨습니다. 그녀는 요가 수업이 끝난 후 참가자들과 마사라티 차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은 둘이 맥주를 마시러 강가로 나갔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세상은 넓지만, 사람을 만나는 건 아주 조심스럽고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제게 준 따뜻한 신뢰에 감사했습니다.

현지 친구 뚜이, 그와 함께한 시장의 기억

루앙프라방에서 지내던 중, 근처 식당에서 일하던 청년 뚜이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어를 꽤 잘했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저를 아침 시장에 데려가 준 적이 있었는데, 저보다 10살이나 어린 그가 라오스의 재래시장 문화를 설명해 주는 모습이 참 진지하고 멋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밤에 강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제가 떠나는 날 그는 손으로 직접 만든 팔찌를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You remember Luang Prabang, ok?”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관계의 속도, 깊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한 달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연결은 여행자로서 느끼는 단편적인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나이, 다른 국적이었지만 마음을 여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느냐보다, 얼마나 진심이 오갔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배운 것들

  • 말보다 눈빛, 미소가 먼저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사실
  • 여유와 따뜻함은 언어의 벽을 쉽게 허문다는 것
  • 짧은 만남도 깊고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

마무리하며

지금도 가끔 루앙프라방을 떠올릴 때면, 제가 머물렀던 방의 향기, 아침 시장의 소란스러움, 메콩강 너머 노을 속 웃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곳에서의 인연들은 모두 우연이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면, 그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그 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