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의 한 달 살기는 한두 번쯤은 누구나 꿈꿔보는 낭만일지도 모릅니다. 물가가 저렴하고, 날씨는 따뜻하고, 바다와 자연이 가까운 이곳에서의 삶은 단기적으로는 마치 휴양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저 역시 첫 한 달은 ‘여기서 그냥 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체류 기간이 두 달, 세 달로 길어지며 처음엔 보이지 않던 불편함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 의료 시스템의 한계와 정보 부족
가장 크게 느꼈던 불편함은 단연코 의료 시스템이었습니다. 동남아는 전반적으로 가벼운 질병엔 대응이 어렵지 않지만, 전문적인 진료나 긴급 상황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습니다. 한 번은 작은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쳤는데, 현지 병원에서는 엑스레이조차 구형 장비로 찍고, 영어로 설명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곤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료비가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대로 된 병원은 사실상 사립병원이고, 비용도 한국보다 훨씬 비싸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비 보험 없이 장기 체류하는 분들이라면 이 점 꼭 주의하셔야 합니다.
2. 비자 연장의 번거로움
단기 여행자는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장기 체류자에게는 비자 연장 문제가 상당히 번거롭게 다가옵니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처럼 30일 체류 후 출국하거나 연장 신청을 해야 하는 곳에서는 '비자 러닝'이라 불리는 출입국 반복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을 육로로 통과해야 했는데, 당일치기로 가능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픽업비, 도장 수수료 등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애매한 규정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어, 신경 쓸 일이 늘어납니다.
3. 현지 식재료에 대한 피로감
처음엔 길거리 음식도 너무 맛있고, 로컬 식당도 신기하고 저렴해서 자주 다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음식이 간절해지고, 현지 식재료에 대한 피로감이 찾아옵니다.
특히 채소나 과일은 풍부하지만, 한국처럼 다양한 종류의 양념, 국물 요리에 적합한 재료가 부족합니다. 직접 요리하려고 해도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한국 식재료는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선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있더라도 가격이 한국보다 2~3배 이상 비쌉니다.
결국 저는 한인마트에서 김치를 사다 먹었고, 가끔은 한국 식당에 가서 찌개 하나에 15,000원 이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식비가 예상보다 더 많이 나가는 순간들이 꽤 많았습니다.
4. 느린 행정과 예측 불가한 상황
은행 계좌 개설, 오토바이 등록, 유심 개통, 공과금 납부 등 기본적인 행정 업무가 생각보다 훨씬 느리고 비효율적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장기 렌트하려고 했을 때, 외국인은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사고 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조건이 붙기도 했습니다.
또, 라오스에서는 공공기관이 점심시간에는 그냥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두세 번을 헛걸음쳤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단전이 되고, 어떤 날은 인터넷이 끊기고, 왜 그런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그런 불가사의한 순간들이 반복되면, 처음엔 웃으며 넘겼지만 나중엔 꽤 지칩니다.
5. 현지인과의 거리감
물론 따뜻하고 친절한 현지인도 많지만, 깊은 관계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언어나 문화 차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활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벽이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일도 하면서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과 친구가 되어도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아 점점 멀어지는 경험을 몇 번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외국인 장기 체류자들과의 교류가 더 자연스러웠고, 정보 공유나 감정 교류도 쉬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인 곳
이런 불편함들을 나열하다 보니 너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다시 동남아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불편함이 있다는 건, 그만큼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음처럼 이상화하진 않지만, 이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준비해서, 좀 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체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기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삶’에 가까운 경험을 원하신다면, 이 불편함 들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 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