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동남아로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용이 저렴하고 날씨가 따뜻해서 선택한 여행지였지만, 어느새 저는 이곳에서 진짜 '슬로우트래블'의 의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일정을 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와 깊이 교감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 진짜 느림의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슬로우트래블을 시도했던 곳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었습니다. 이 작은 도시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시장에서 상인과 길게 인사를 나누며, 메콩강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 그런 일상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동시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슬로우트래블을 하면서 저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보다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행 초반에는 구글맵을 켜고 명소를 빠르게 훑는 방식으로 일정을 채웠지만, 점점 그 방식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현지 마을 주민과 함께 밥을 먹고, 길가에서 열린 음악 수업을 따라 들어가 보는 그런 우연의 연속이 저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치앙마이에서 2주간 지냈을 때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숙소 근처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셨어요. 그런데 매일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미소를 나누고,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죠. 어느 날은 직접 농장에서 따온 망고를 한 봉지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망고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슬로우트래블은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약이 됩니다. 숙박은 한 달 단위로 협의하면 저렴해지고, 식사는 현지 식당이나 시장에서 해결하면 하루 식비가 1~2천 원 수준이기도 하니까요. 대신,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정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짧고 굵게'가 아닌 '길고 깊게'가 슬로우트래블의 핵심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제 자신에게 생겼습니다. 성격이 급했던 저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 날씨가 갤 때까지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는 일, 대중교통이 올 때까지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일이 익숙해졌습니다. 이런 느림이 오히려 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줬습니다.
이제 여행은 더 이상 '탈출'이 아닙니다. 저는 슬로우트래블을 통해, 낯선 도시에서도 '머무는 법'을 배웠고, 어디서든 제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단순히 여행지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와 나 사이에 '기억'이 쌓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죠.
혹시 바쁜 일상에 지쳐 있다면, 한 번쯤은 일정표 없는 여행을 떠나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동남아에서 배웠습니다. 슬로우트래블은 단순히 여행의 한 방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강력한 기회였습니다.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저는 또다시 천천히 걷고, 느리게 머물며, 그곳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진짜 슬로우트래블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