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은 발리, 롬복, 그리고 코모도섬일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코모도왕도마뱀을 직접 보고, 핑크빛 해변에서 사진을 찍고, 만타레이와 함께 수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플로레스에 도착해 보니, 이 섬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라부안 바조는 시작일 뿐
플로레스 여행은 서쪽 끝의 작은 항구 도시, 라부안 바조(Labuan Bajo)에서 시작합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온통 코모도 투어 광고였어요. 다양한 옵션의 보트 투어가 있고, 하루짜리부터 3박 4일짜리까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루짜리 보트 투어를 신청해 코모도섬, 패당섬, 핑크비치, 만타 포인트를 돌았고
운 좋게도 만타레이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정말 영화 같은 순간이었죠.
하지만 돌아오는 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섬엔 과연 이것만 있는 걸까?”
케리무투 화산에서 본 세 가지 색
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저는 플로레스의 중앙부, 몬이(Moni)라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케리무투(Kelimutu) 화산. 세 개의 분화구 호수가 각각 다른 색을 띠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해 손전등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별로 가득했고, 공기는 싸늘할 정도로 맑았습니다.
30여 분을 걷고 도착한 정상에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초록빛, 짙은 청록, 어두운 회색… 세 개의 호수가 같은 화산 안에 있으리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각기 다른 색을 보여줬죠.
일출과 함께 호수 위로 퍼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제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습니다.
와에레보, 구름 속 마을에서의 하루
플로레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와에레보(Wae Rebo)였습니다.
외딴 산골짜기 깊숙한 곳, 오직 도보로만 갈 수 있는 이 마을은 마치 다른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듯했습니다.
전통 원형 지붕을 가진 집 일곱 채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저는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전기도 거의 없고, 와이파이도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 주민들과 함께 식사하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와에레보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저에게는 하나의 ‘배움’이었습니다.
플로레스는 이렇게 여행하세요
- 입국: 발리에서 라부안 바조까지 국내선 약 1시간 소요
- 이동 수단: 장거리 버스, 전용차 렌트, 오토바이 활용 가능
- 최소 일정: 라부안 바조(2일), 케리무투(2일), 와에레보(2일) 포함 최소 6박 7일
- 예산: 중저가 숙소 기준 1일 5만~7만 원 / 와에레보 숙박은 약 30~40달러
- 추천 시기: 건기(4~10월) 방문 권장, 우기에는 이동 어려움 있음
플로레스, 코모도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깝습니다
많은 분들이 플로레스를 ‘코모도섬 있는 곳’ 정도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플로레스는 그 이상입니다.
화산호의 신비로움, 구름 위 마을의 평화로움, 거친 산길 너머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코모도섬만 보고 돌아가기엔, 이 섬엔 너무 많은 보물이 숨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얼굴을 보고 싶으시다면, 이번 여행엔 꼭 플로레스를 넣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