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에 머물렀던 한 달 동안, 저의 하루는 언제나 아침시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숙소 근처에 있던 작은 로컬 시장은 관광객이 거의 없는 곳이었기에, 저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자 신분이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시장을 찾다 보니 점점 ‘손님’이 아니라 ‘이웃’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한 달의 기록은 단순한 장보기 경험을 넘어,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익혀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1. 이른 시간의 부지런함
치앙마이의 아침시장은 대체로 새벽 5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 며칠 동안은 7시쯤 나가곤 했는데, 그 시간에는 이미 좋은 채소와 과일들이 많이 팔려나가고 없었습니다. 며칠 후 마음을 다잡고 새벽같이 나가보니, 어둑한 새벽 공기 속에서 상인들이 분주히 좌판을 펼치고, 갓 수확한 채소와 따끈한 음식들이 줄지어 놓이는 광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이건 단순히 시장뿐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되는 지혜라 느꼈습니다.
2. 작은 단위의 경제학
한국에서는 마트에서 대부분 대량으로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치앙마이 시장에서는 꼭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었습니다. 마늘 한 줌, 고추 몇 개, 혹은 파 한 뿌리도 팔아주었지요. 저처럼 혼자 머무는 사람에게는 꼭 맞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과소비를 막고,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생활 방식은 제가 평소에 습관처럼 해왔던 ‘사놓고 남기는 소비’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시장의 작은 거래 속에서 알게 된 절약의 미덕은 이후에도 저의 생활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3. 나누는 인심의 힘
치앙마이 아침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물건을 사고 난 뒤 덤을 얹어주던 상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를 한 송이 샀는데 작은 바나나 두 개를 더 얹어주시거나, 고수를 사면 작은 라임을 슬쩍 넣어주는 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이 주시나?’ 싶었지만, 그것이 시장 사람들의 정이자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더 주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손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배운 것이지요. 그 이후 저 역시 다른 이와 나눌 때 ‘조금 더’ 얹어주는 마음을 실천해보게 되었습니다.
4. 협상보다 신뢰
동남아 시장에서는 흥정이 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치앙마이 아침시장에서 저는 거의 흥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상인에게서 같은 물건을 사다 보니, 저절로 가격을 깎지 않아도 저에게 좋은 것을 골라주거나, 전보다 더 넉넉히 담아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협상으로 얻는 작은 이익보다, 신뢰로 얻는 지속적인 관계가 더 크다’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단순한 장보기 이상의 의미를 남겨주었습니다.
5. 음식에서 배우는 현지의 지혜
아침시장에서 저는 매일 새로운 음식을 시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음식들이었지만, 조금씩 용기 내어 사 먹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특히 찹쌀밥에 구운 닭, 따끈한 콩두부 스프 같은 메뉴들은 현지인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기본 음식이었고, 저 역시 그들의 생활에 조금은 스며든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값비싼 레스토랑이 아니라, 소박한 시장 음식에서 진짜 삶의 맛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6. 시장이 알려준 하루의 리듬
한 달 동안 아침시장에 다니면서 가장 큰 변화는 제 하루 리듬이 규칙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시장을 다녀온 뒤에는 숙소로 돌아와 천천히 아침을 먹고, 일을 정리하거나 글을 쓰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시장을 다녀오면 하루가 훨씬 길고 여유롭게 느껴졌습니다. 시장은 단순한 장보기가 아니라, 하루를 건강하게 여는 의식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7. 치앙마이 아침시장이 남긴 깨달음
치앙마이에서의 아침시장 경험은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저에게 작은 생활 철학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 좋은 것을 얻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절제의 지혜.
- 나눔은 잃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쌓는 일.
- 흥정보다 신뢰가 오래간다.
이 네 가지는 시장을 떠난 지금도 저의 삶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면, 치앙마이 시장에서 덤을 얹어주던 상인의 웃음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나누며, 조금 더 신뢰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결국, 치앙마이의 아침시장은 저에게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교실이었습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배운 생활의 지혜를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