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앙마이 현지인 친구가 알려준 숨은 저녁 맛집
치앙마이에 오래 머물다 보면, 지도에 별점 높은 식당보다 더 설레는 곳이 생깁니다. 표지판도 작고 영어 메뉴도 없는, 동네 사람들만 드나드는 로컬 저녁 식당 말입니다. 저는 현지인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런 곳을 여러 번 다녀왔고, 그때마다 “아, 이게 진짜 북부 태국의 저녁상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의 저녁을, 제가 느낀 냄새와 온도, 소리까지 가능한 한 그대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관광 안내문이 아니라, 체류자의 일기처럼 차분히 풀어보겠습니다.
1) 골목의 입구에서 이미 시작된 저녁: 길 찾기와 첫인상
약속 장소는 님만해민의 번쩍이는 간판 거리가 아니라, 구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주택가 골목이었습니다. 지도에 뜨는 별점도, 리뷰 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해가 서서히 기울던 시간, 퇴근한 오토바이들이 좁은 길을 스치듯 지나가고, 집집마다 저녁 기름 냄새가 공기를 얇게 덮었습니다. 친구가 “여기 맞아, 오늘은 북부식으로 먹자”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솔직히 그냥 지나치면 작은 포장마차로만 보일 정도로 소박했습니다.
간판은 태국어로만 적혀 있었고, 네온사인 대신 노란 등 한 개가 문 위에서 흔들렸습니다.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이 길가에 늘어서 있고, 얼음이 담긴 흰 스티로폼 박스가 문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기름 팬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 절구로 ‘쿵쾅’ 으깨는 북부식 찌개용 허브 소리가 번갈아 들렸습니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습니다. 냄새와 소리가 “제대로”였거든요.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물컵과 얼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친구는 태국어로 짧게 몇 마디를 건네더니 “오늘은 내가 주문할게”라며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습니다. 저는 메뉴판을 펼쳐 보려고 했지만, 종이 메뉴는 없었습니다. 벽에 태국어로 적힌 칠판이 전부였고, 대신 유리 진열장 안에 재료가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의 ‘메뉴판’은 글자가 아니라 재료의 얼굴이었던 셈이죠.
2) 북부의 식탁을 차리다: 카오소이, 남프릭옹, 라브, 그리고 숯불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카오소이였습니다. 치앙마이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 먹는 북부식 커리국수지만, 이 집의 그릇은 익숙한 맛의 저편에 있었습니다. 그릇이 놓이는 순간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두 가지 면의 대비였습니다. 그릇 바닥에는 부드러운 계란면이, 위에는 바삭하게 튀긴 면이 산처럼 얹혀 있었습니다. 국물은 노랗다기보다 구수한 황토색에 가까운 빛을 띠고 있었는데, 코끝에 닿는 향은 달콤·짭짤·고소가 겹겹이 쌓인 복합향이었습니다.
한 숟갈 떠 넣자, 너겟처럼 부드럽게 끊기는 면발과 묵직한 코코넛 밀크, 그 뒤를 잇는 카레 페이스트의 깊이가 차례로 혀를 스쳤습니다. 레몬을 살짝 짜 넣으니 묵직함의 중심이 하나 열리듯 밝아졌고, 적절히 곁들여 나온 양파 절임과 픽클 고추가 뒷맛을 날렵하게 정리했습니다. 친구는 “여긴 튀긴 면을 마지막에 올려서 바삭함이 오래가”라고 귀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국물 위에 떠 있는 면 조각이 끝까지 눅눅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남프릭옹. 토마토와 다진 돼지고기를 매콤하게 볶아 만든 북부식 디핑 소스입니다. 귀여운 토기 그릇에 담겨 왔고, 주먹만 한 오이, 길쭉한 가지, 삶은 호박, 배추잎이 함께 나왔습니다. 숟가락으로 남프릭옹을 떠서 야채 위에 올리고 한 입 베어 물면, 기름지지 않고 개운한 매운맛이 입안을 환하게 비웠습니다. 집에서 밥반찬으로 매일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백했습니다.
세 번째는 라브 무(Larb Moo). 라임과 피시소스, 구운 쌀가루, 허브가 어우러진 다진 돼지고기 샐러드입니다. 접시가 내려오자 허브 향이 먼저 머리를 맑게 했습니다. 민트, 고수, 샬롯의 냄새가 복잡하게 얽히지 않고 선명하게 솟아올랐습니다. 한 입 넣으면 매콤함보다 먼저 비치는 라임의 밝기, 이어서 다진 고기의 고소함, 마지막에는 구운 쌀가루의 고온향이 천천히 드러났습니다. 식당의 온도와 소음 속에서도 맛의 결이 흩어지지 않는, 조심스러운 접시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숯불에서 바로 구운 생선이 나왔습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숯 향은 늘 정직합니다. 양념은 과하지 않았고, 소금과 허브로만 밑간된 듯했습니다. 생선의 살은 단단하면서도 촉촉했고, 뼈 사이에 끼어 있던 뜨거운 기름이 입천장과 혀 사이에서 작은 파동을 만들었습니다. 생선 살을 떼어 찰기 있는 찹쌀과 함께 집어 남프릭옹에 살짝 찍어 먹는 순간, 저는 어쩐지 조용해졌습니다.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맛이 이미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요.
3) 가격, 주문, 그리고 예의: 관광 메뉴가 아닌 생활의 리듬
세 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가격은 한국의 평범한 점심값 정도였습니다. 친구는 계산대에서 사장님과 짧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저는 카운터에 놓인 고무줄 뭉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배달 주문과 포장에 바쁜 로컬 식당의 리듬은,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관광객을 위한 ‘세트’가 없었습니다. 칠판의 추천 메뉴는 오늘 들어온 재료에 따라 바뀌고, 주방의 손놀림은 준비된 동선대로, 과장 없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주문 팁을 드리자면, 현지인 친구가 없다면 보이는 재료를 가리키며 주문하셔도 괜찮습니다. 태국어를 못해도 웃으며 손짓으로 “이거, 저거”를 하면 거의 통합니다. 매운 정도는 “페트 마이?(매운가요?)”라고 물으면, 보통 “니트 노이(조금)” 하며 손가락을 모아 보여줍니다. 너무 맵게 주문하지 않으시려면 “마이 펫(안 매운)”이라고 말해 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시간대에는 자리 회전이 빠릅니다. 드시고 오래 머무르기보다, 한 블록 옆 카페나 바에서 마무리를 하시면 서로 기분이 좋습니다.
4) 식당이 알려 준 도시의 속도: 소리, 냄새, 그리고 표정
이 집에서 가장 오래 기억나는 건, 맛 그 자체보다도 소리였습니다. 절구의 둔탁한 박자, 오토바이의 굉음이 골목 입구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곡선, 얼음 집게가 유리컵의 벽을 치는 ‘챙’ 소리, 젓가락이 플라스틱 그릇 바닥을 살짝 긁는 마찰음까지. 그런 소리들이 식당의 공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다들 낮은 톤으로 빠르게 이야기하고, 금방 웃고,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소리가 커지지 않아도 열기가 식탁 위에 오래 남았습니다.
냄새는 층층이 쌓였습니다. 숯, 고수, 라임 껍질, 튀김 기름, 생선 비늘의 짧은 비린내, 플라스틱 테이블의 햇볕 냄새까지. 제가 앉은 테이블은 바람길 가운데에 있었고,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주방의 스팀과 합쳐 식당을 한 바퀴 돌고 나가는 듯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낯선 냄새가 사람을 긴장시키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안정을 주었습니다. ‘이 동네의 저녁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납득 같은 것.
사람들의 표정도 오래 머물렀습니다. 주방의 젊은 요리사는 내내 앞치마의 구석으로 땀을 닦았고, 할머니 손님은 끊어진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묶어 다시 썼습니다. 옆 자리의 아이는 우리 테이블의 라브를 힐끔 보다가 부모님에게 같은 걸 주문하자고 조르더니, 금세 게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녁의 배경이 아니라, 저녁 그 자체였습니다.
5) 한 끼가 만들어 준 관계: 현지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
식사가 끝난 뒤, 가게 밖으로 나오며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집이야?”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여기는 맛이 변하지 않아”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습니다. “사람이 바뀌고, 날씨가 바뀌고, 손님이 바뀌어도, 이 집의 카오소이는 늘 같은 맛이야.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으면, 그 동네를 믿고 살 수 있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늘 새로운 곳을 찾고, 새로운 맛을 좇는 편이었는데, 친구는 같은 자리를 지키는 맛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집과 일, 그리고 여행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여행도 결국 루틴이 있어야 더 오래 즐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동의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저녁 한 끼를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하나 생기면, 그 도시는 더 이상 잠깐 들른 곳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됩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식당을 두 번 더 찾아갔고, 세 번째 방문에서는 종업원이 먼저 “라브 무?”라고 물었습니다.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저는 그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6) 실전 팁: 처음 가시는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
① 시간대 — 저녁 6시~8시 사이가 가장 활기찹니다. 너무 늦으면 재료가 동나는 메뉴가 있습니다.
② 앉는 자리 — 주방과 너무 가까운 자리는 열기가 강합니다. 선풍기 바람이 스치는 벽 쪽이 편안합니다.
③ 매운맛 조절 — “마이 펫(안 맵게)” 한마디면 톤다운이 됩니다. 테이블의 뿌리다 같은 고추양념은 아주 조금씩.
④ 위생·물 — 얼음은 대부분 공장에서 납품받는 정제 얼음을 씁니다. 민감하시면 생수를 따로 주문하세요.
⑤ 결제 — 현금이 기본. 간혹 QR 결제도 되지만 통신 상태에 따라 실패합니다. 잔돈은 작은 단위로 준비를.
⑥ 사진 예의 — 사람 얼굴은 허락을 받으시고, 주방은 바쁠 때 플래시는 금물입니다.
7) 마무리: 한 그릇의 기억이 한 도시를 바꾼다
돌아보면, 그날의 저녁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유명 셰프도, 화려한 플레이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 식당을 떠올릴 때마다 어깨가 풀립니다. 국물이 뜨겁게 김을 올리던 순간, 라임을 짜던 손끝의 산뜻함, 얼음컵의 물방울이 테이블을 적시던 동그란 자국까지 또렷합니다. 한 끼가 도시를 더 가깝게 만드는 경험을 저는 그날 배웠습니다.
치앙마이를 여행하실 계획이시라면, 별 다섯의 리뷰 대신 현지인이 “그냥 여기”라고 말해 주는 식당을 한 번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길은 조금 헤맬 수 있지만, 헤맴이 곧 지도에 없는 맛의 경로가 됩니다. 변함없이 같은 맛을 내는 집을 한 번 만나고 나면, 그 도시에서의 밤이 훨씬 덜 낯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치앙마이에 돌아오실 때, 공항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 그 집의 카오소이일지도 모릅니다.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