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걷기인가: 여행자의 하루를 붙잡아 주는 리듬
호이안에 머무는 동안 제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일과는 어쩌면 아주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 일. 하지만 그 단순함이야말로 낯선 곳에서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습니다. 저는 관광지 체크리스트를 줄이는 대신, 발바닥으로 이 도시의 리듬을 확인했습니다. 발걸음은 느리고, 호흡은 길어지고, 눈은 더 많은 것을 담아내게 되죠. 이 글은 지도나 맛집 리스트가 아니라, 제가 실제로 매일 걸으며 만든 나만의 호이안 산책 코스를 시간 순서대로 풀어낸 기록입니다.
AM 6:30 — 투본강에서 맞는 첫 빛
해가 수면 가까이에서 막 고개를 드는 시각, 저는 투본강 강변 난간에 손을 올려두고 강바람을 먼저 맞습니다. 물 위를 스치는 바람은 밤새 머금었던 습기를 달고 오는데, 그 촉감은 마치 찬 수건으로 얼굴을 가볍게 닦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강가에는 작은 배들이 조용히 정박해 있고, 어부들이 그물에서 마지막 은빛 비늘을 털어 냅니다. 배 바닥에 물이 ‘찹’ 하고 고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클 벨 소리, 강 건너 편에서 준비 운동을 하는 노인들의 낮은 웃음이 귀를 깨웁니다. 저는 항상 이곳에서 몇 번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 뒤, 다리 쪽으로 발을 옮깁니다.
AM 6:45 — 내원교(일본교) 위에서 3분 멈춤
강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내원교에 닿습니다. 낮에는 셀피봉이 숲을 이루는 곳이지만 아침의 다리는 놀라울 만큼 고요합니다. 다리 난간에 손을 얹으면 밤새 식은 돌의 차가운 감촉이 전해지고, 기둥 사이로 비껴드는 햇살이 물결 위에서 부서집니다. 저는 이곳에서 늘 3분간 멈춰 있습니다. 오늘의 걸음이 너무 빠르지 않도록, 마음의 속도를 산책의 속도에 맞추는 시간입니다.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배의 물살이 만든 동그란 잔물결을 세다 보면, 머릿속 소음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AM 7:00 — 황토벽 골목으로 들어서는 문턱
다리를 지나 오른편으로 꺾으면 황토빛 벽과 낡은 초록 셔터가 이어지는 골목이 시작됩니다. 땅은 매끈한 듯 보이지만 군데군데 작은 파임이 있어서 발목에 전해지는 감각이 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후각이 길잡이가 됩니다. 갓 끓인 쌀국수의 따뜻한 국물 향, 숯에 불을 붙일 때 나는 매캐한 냄새, 빵집에서 나온 고소한 반죽 향이 층층이 얹혀서 코끝을 건드립니다. 자전거가 뒤에서 ‘따르릉’ 하고 지나가면, 저는 자동으로 벽 쪽으로 몸을 붙이고, 아이들은 학교 가방을 한쪽으로 멨는지 반대쪽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습니다. 그 작은 비대칭까지도, 매일 보는 풍경이 되면 은근한 정이 들어옵니다.
AM 7:15 — 로컬 빵집의 의식: 따뜻한 반미 빵 하나
골목 끝 모퉁이의 작은 빵집은 제 산책의 첫 정거장입니다. 쇼케이스에는 금방 구운 바게트가 줄지어 서 있고, 표면을 손끝으로 살짝 누르면 ‘사각’ 소리가 나며 금이 갑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보면 “굿모닝!”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특별한 대화는 없습니다. 대신 빵 종이봉투가 손에 건네지는 순간의 온도, 거기에 찍힌 기름 자국, 봉투가 바람에 ‘사각’ 되는 소리 같은 디테일이 하루의 첫 문장을 완성해 줍니다. 저는 따끈한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고소함이 입천장에 얇게 코팅되는 느낌을 즐기며 다음 구간을 향합니다.
AM 7:25 — 랜턴의 낮 얼굴을 스치는 길
사람들은 보통 밤의 랜턴을 기억하지만, 저는 낮의 랜턴을 더 좋아합니다. 햇빛이 천천히 각도를 바꾸며 비단 같은 표면을 훑고 지나가면, 색은 더 촘촘하게 살아납니다. 가끔 랜턴 끝의 실 한 올이 바람에 떨리는 걸 보면, 이 도시가 하루를 여는 떨림을 함께 느끼는 듯합니다. 랜턴 줄 아래에는 재봉틀 소리가 ‘딱딱’ 울리는 수선집, 색감 강한 비단 조각들이 광고처럼 걸린 맞춤 양복점이 이어집니다. 수선집 할아버지는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바늘 끝을 혀로 살짝 적신 뒤 실을 꿰는데, 그 집중의 표정이 마치 명상가 같습니다.
AM 7:40 — 작은 카페, 얼음 가득한 잔과 느린 시간
늘 쉬어가는 카페는 간판도, 메뉴판도 소박합니다. 저는 ‘카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를 한 잔 주문합니다. 유리잔에 얼음이 서걱서걱 쌓이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이어서 진한 에스프레소와 연유가 층을 이룹니다. 빨대를 꽂아 첫 모금을 빨아들이면, 혀끝에는 달콤함이, 목 뒤에는 시원함이 동시에 번집니다. 카페 한쪽에서는 TV에서 현지 뉴스가 묵음으로 흘러가고, 사장님은 커다란 얼음덩이를 손도끼로 쪼개며 “마이 마이(천천히)”라고 말해줍니다. 저는 그 말에 맞춰 노트에 오늘의 할 일을 몇 줄 적습니다. ‘빨리’보다 ‘꾸준히’가 어울리는 도시에서, 할 일도 걷기처럼 천천히 나열됩니다.
AM 8:05 — 시장으로 향하는 골목, 냄새와 색의 박물관
카페를 나와 시장 쪽으로 걷기 시작하면 공기가 달라집니다. 생선 코너로 가까워지면 바다의 소금기가 먼저 코를 치고, 채소 구역에서는 라임, 민트, 고수 같은 풀내가 그 뒤를 이어 옵니다. ‘생선 비린내’와 ‘풀 향’이 한 골목 안에서 교대로 지휘권을 잡는 장면이 저는 늘 재미있었습니다. 상인들은 얼음을 부어 신선도를 유지하고, 물이 바닥으로 흐르며 햇빛 조각을 반사합니다. 저는 주로 작은 파인애플 하나와 바나나, 때로는 허브 한 다발을 삽니다. 계산은 짧고, 미소는 깁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는 통역이 필요 없습니다.
AM 8:30 — 강변으로 되돌아오는 길, 그늘과 햇빛의 리듬
시장 초입을 지나 다시 강변으로 돌아오면, 이미 햇빛은 높아졌고 그림자는 짧아집니다. 저는 보도 블록의 그늘과 햇빛을 번갈아 밟으며 걷습니다. 발등에 닿는 열기와 그늘의 서늘함이 교대로 발걸음의 템포를 바꿉니다. 벤치에 앉아 파인애플을 한 조각 베어 물면, 혀 옆면에 미세하게 따끔거리는 산미가 잠을 한 번 더 깨웁니다. 강 위로는 관광 보트가 첫 손님을 태우기 시작하고, 선장은 밧줄을 정리하며 손바닥의 굳은살을 쓸어봅니다. 그 표정을 보면 일의 시작이 늘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AM 9:00 —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코스의 이유
돌아오는 길의 마지막 구간은 일부러 처음 왔던 길과 살짝 다르게 잡습니다. 같은 도시라도 앵글이 바뀌면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보지 못한 벽의 균열, 새로 칠해진 파스텔 블루의 셔터, 새끼 고양이가 햇빛을 좇아 이동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책의 목적이 ‘발걸음 수’가 아니라 ‘발견’으로 바뀌면, 매일의 길은 결코 지루해지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제가 다르게 보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산책은 이미 충분히 유익합니다.
PM 7:30 — 같은 길, 다른 얼굴: 저녁 산책의 보너스
가끔은 저녁에도 같은 코스를 거꾸로 걸어봅니다. 해가 진 뒤, 랜턴들은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낮에 봤던 색이 빛으로 바뀌고, 강물의 표면에는 별 대신 등불이 떠다니죠. 낮에는 조용하던 골목이 기타 소리와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상점 셔터의 금속성 냄새 대신 길거리 음식의 기름 냄새가 공기를 장악합니다. 저는 이때도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그저 오전에 손을 얹었던 난간을 다시 한번 만지고, 바람의 온도가 바뀐 것을 확인하고, 발자국을 겹치듯 찍고 돌아옵니다. 같은 길을 두 번 걷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의 두 얼굴을 인사하는 셈입니다.
산책 코스를 따라 걷는 팁: 속도, 시선, 한 손의 여유
첫째, 속도를 정하지 마세요. 걷다 멈추고, 다시 걷고, 또 멈출 수 있어야 산책이 됩니다. 둘째, 시선을 낮춰보세요. 발밑의 균열, 물 고인 자리, 페인트가 벗겨진 표면이 도시의 연대를 말해줍니다. 셋째, 한 손은 비워두세요. 갑자기 건네지는 종이봉투, 열대 과일의 무게, 난간의 감촉을 잡을 수 있게요. 마지막으로, 한 번 걸었던 길을 다음 날엔 반대로 걸어보세요. 풍경은 거의 같은데 기억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씁니다.
마무리: 관광지를 삶으로 바꾸는 가장 느린 방법
호이안 올드타운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길을 걸어본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표정이 있습니다. 저는 산책을 통해 ‘여행’을 ‘생활’로 조금씩 번역했습니다. 걷기는 무료이고,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고, 무엇보다 도시를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발걸음이 쌓인 만큼 애정도 쌓이고, 다음 날의 길은 어제보다 더 따뜻해집니다. 만약 당신이 호이안에 온다면, 지도에서 별표 친 명소를 잠시 덮어두고 이 코스를 걸어보길 권합니다. 당신의 발걸음이 이 도시를 더 천천히 빛나게 만들 것입니다.